취업과 소프트웨어는 망했다
AI가 채용 시장에 대거 도입되면서 규칙을 지키는 정직한 구직자만 오히려 불리해지는 왜곡된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10년 차 베테랑 엔지니어가 직접 겪은 구직 경험을 통해, AI 만능주의가 어떻게 개발자의 존엄
AI가 채용 시장에 대거 도입되면서 규칙을 지키는 정직한 구직자만 오히려 불리해지는 왜곡된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10년 차 베테랑 엔지니어가 직접 겪은 구직 경험을 통해, AI 만능주의가 어떻게 개발자의 존엄성과 주니어의 기회를 앗아가고 있는지 날카롭게 짚어봅니다.
10년 차 블리자드 엔지니어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습니다. 소규모 외주 업체들을 거쳐 세계적인 게임사 중 하나인 블리자드(Blizzard)에서 약 7년간 근무했죠. 하지만 2025년 6월, 팀 전체가 한꺼번에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원치 않는 구직 전선에 다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겪어본 채용 시장 중 단연코 최악이라고 단언할 수 있어요. 지난 6개월 동안 수많은 곳에 지원하면서 겪은 결과들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뉩니다.
- 최종 단계까지 진행 후 아쉽게 탈락: 모든 흐름이 긍정적이었고 합격을 기대했으나, 마지막 순간에 다른 외부 지원자나 사내 내부 이동자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습니다. 채용 담당자가 맞는 다른 포지션이 있다며 몇 주간 메일을 주고받다가 돌연 연락이 완전히 끊기기도 했죠. 이 쓸쓸하고 무의미한 과정에 완전히 지쳐 결국 링크드인(LinkedIn) 인맥들을 대거 정리했습니다.
- 초반 필터 단계에서 가차 없이 탈락: 서류 접수 직후나 첫 스크리닝 단계에서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 철저한 침묵(Ghosting): 제 기술 스택과 경력이 해당 직무에 완벽하게 일치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기업이 서류 접수 이후 어떠한 피드백이나 응답도 주지 않았습니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로 만드는 AI 초기 필터
요즘 구직 과정에서 가장 지치고 화가 나는 지점은 바로 코더패드(Coderpad), 해커랭크(HackerRank), AI 감독관 시험 같은 초기 필터 시스템입니다.
기업들은 효율적인 검증을 명목으로 이 도구들을 적극 도입하고 있는데요. 이 앱들은 시험이 시작되면 브라우저 화면을 강제로 전체화면으로 잠가서 API 레퍼런스나 공식 도큐먼트 도움말 페이지에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하지만 정작 휴대폰으로 최신 AI 도구를 켜놓고 곁눈질하며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지원자들에게는 완전히 무력합니다.
결국 정직하게 규칙을 지키며 자신의 머리로 문제를 풀려는 지원자들만 압도적으로 불리해지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에요. 심지어 이러한 테스트들은 실제 프로그래밍 실무와 완전히 동떨어진 사람들이 설계한 경우가 많아서, 오직 "코드가 길고 복잡할수록 더 훌륭하다"는 식의 편협한 인식만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시지프스의 형벌이 된 구직 활동과 AI 만능주의
기업들이 채용 프로세스 곳곳에 AI를 억지로 밀어 넣으면서, 구직 자체가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의 바위 굴리기처럼 끝없는 고통의 과제로 변모했습니다.
마치 기업들이 앞마당에 레고 블록을 잔뜩 흩뿌려 놓고는, 지원자들에게 그 위를 맨발로 춤추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기업들은 AI 모델인 클로드(Claude)에 제공되는 토큰 소진 할당량을 기어이 채우기 위해, 지원자들에게 억지로 과제를 수행하게 하거나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며 시스템에 맞추라고 요구합니다. 여기에 키워드 기반의 이력서 자동 스크리닝 시스템까지 더해지면서 통과하기가 배로 어려워졌어요. 매 단계마다 마주하는 형식적인 과제들은 구직자들을 극도로 소모시킵니다.
주니어의 사다리를 완전히 걷어찬 기업들
사실 10년 차 경력을 가진 저조차도 가끔 면접 기회라도 얻는 것 자체가 꽤 운이 좋은 축에 속합니다. 비록 그 면접들이 최종 합격으로 이어지지는 못할지라도 말이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디려는 신입 개발자들의 상황을 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지금 기업들은 성장 사다리를 완전히 걷어차 버렸습니다. 업계 분위기를 보면, 기업들이 앤트로픽(Anthropic) 같은 테크 기업이 주니어 개발자의 필요성 자체를 완전히 없애주기만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AI 코딩 수용을 거부하며: 엔지니어로서의 존엄성
물론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개발자 채용 시장이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AI의 무분별한 도입은 기존 채용 시스템이 가지고 있던 최악의 문제점들을 극단적으로 증폭(Supercharge)시켰어요.
소위 기술적 우위에 서 있다는 똑똑한 사람들이 AI 코딩을 거스를 수 없는 미래로 받아들이고 굴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예술가 친구들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
- 코드의 품질을 위해 테스트와 코드 리뷰에 정성을 쏟는 테스터들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는 일
- 대사 한 줄, 문장 하나에도 감정을 담으려 에너지를 쓰는 작가들의 가치를 지워버리는 일
- 무엇보다 보안과 좋은 코드를 진심으로 중시해 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의 깊은 자존심과 존엄성을 버리는 일
비록 지금의 구직 환경은 저를 한없이 지치게 만들지만,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이상한 컴퓨터 괴짜(Weird Computer Nerd)'로서의 순수한 즐거움만큼은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와 기술의 본질을 버리고 효율성에만 굴복하는 일에는 끝까지 저항하겠습니다.
아직 이 아티클로 만든 공식이 없어요. 첫 번째 공식을 남겨보세요!
나도 공식 만들기
댓글
6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이 필요해요.
AI 도입으로 인해 예술가, 테스터, 작가의 가치를 내치고 엔지니어의 존엄성까지 위협받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에게 레고 위를 맨발로 춤추며 가치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현재의 경험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느껴져요. 우리가 기술적 효율성 속에서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인간적인 가치와 존엄성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요?
본문은 AI 코딩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흐름이 예술가, 테스터, 작가 동료들의 가치를 내팽개치고 엔지니어의 존엄성까지 위협한다고 경고합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인간적 가치는 주니어의 진입 장벽을 없애고 그들을 포용하는 상생의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나아가 기계적 효율성 속에서도 '이상한 컴퓨터 괴짜'로서 느끼는 개발 본연의 즐거움과 동료들의 역할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을 유지해야 합니다.
키워드 기반 이력서 스크리닝과 바쁜 과제들 때문에 정작 10년 경력의 인재까지 놓치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구축되고 있군요. 기업들이 주니어의 필요성을 없애주길 기대하며 사다리를 걷어차는 현상은 장기적인 인재 육성 비용 측면에서도 큰 손해입니다. 무너진 채용 프로세스의 효율성을 되찾기 위해 기업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영역은 어디일까요?
기업들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부분은 기계적인 키워드 기반 이력서 스크리닝과 무의미하게 바쁜 과제 제출 방식입니다. 본문에서는 10년 경력의 베테랑조차 직무에 잘 맞음에도 무응답으로 방치되거나 최종 단계에서 피드백 없이 소통이 끊기는 비효율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AI 토큰 소진에만 집착하는 시스템을 멈추고, 주니어의 사다리를 완전히 걷어차지 않는 인재 육성 관점의 채용 프로세스 정상화가 시급합니다.
화면을 잠그는 Coderpad나 AI 감독관 시험이 정작 휴대폰을 이용한 AI 부정행위는 막지 못한다는 지적이 무척 날카롭네요. 규칙을 지키는 지원자만 불리해지고 실무와 동떨어진 기준에 순응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어요. 이런 평가 도구들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짜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현실적인 평가 방식은 무엇이 있을까요?
본문에서는 기존 Coderpad나 HackerRank 같은 필터의 기술적 한계와 부정행위 차단 실패를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대체할 구체적이고 새로운 평가 방식을 직접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무와 완전히 동떨어진 채 '코드가 많을수록 더 낫다'는 식의 기계적인 기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진짜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보안과 코드의 질을 진심으로 중시하는 개발자로서의 존엄성을 확인해 줄 수 있는 대안적 소통이 필요함을 시사합니다.